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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뮤지컬계 돈키호테’…“개츠비처럼 살고 싶다” 정면승부
- 작성일2023/05/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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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브로드웨이 3번째 도전 신춘수 프로듀서
브로드웨이에 재도전하는 신춘수 프로듀서. 액자 속은 ‘위대한 개츠비’ 무대 스케치컷. 최기웅 기자
강남 빌딩 두 채 값을 날리고, 딱 그만큼 빚을 졌다. ‘뮤지컬계 돈키호테’ 신춘수(55) 오디컴퍼니 대표의 브로드웨이 도전 성적표다. 2009년 ‘드림걸즈’의 공동 프로듀서로 브로드웨이에 발을 들였지만, 리드(책임) 프로듀서로 나선 ‘홀러 이프 야 히어 미’(2014), ‘닥터 지바고’(2015)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지킬앤 하이드’‘맨오브 라만차’ 등 국내 베스트셀러를 잔뜩 보유한 신 대표로선 자존심 상할 법도 한데, 웬걸 더 큰 풍차를 향해 돌진한단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꼽히는 F. 스콧 피츠제럴드 원작의 ‘위대한 개츠비’로 정면승부를 선언했다. 10월 뉴저지에서 트라이아웃 공연 후 내년 초 브로드웨이 입성이 목표다. 과연 이번에는 칼을 제대로 갈았을까. 11일 만난 그는 “위기 때마다 귀인이 나타나 내 꿈과 열정을 믿어줘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계적인 IP로 키워 ‘라이온킹’의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 ‘오페라의 유령’의 RUG(리얼리 유스풀 그룹) 수준으로 도약하는 게 한국 뮤지컬계의 방향성”이라고 했다.
K뮤지컬 미래, 프로듀서에 달려
세 번째 도전이니 조심스러울까 싶었지만, 과연 ‘돈키호테’는 두려움을 몰랐다. 무대의 완성도까지 벌써 자신만만했다. “다시 정면승부 결심할 계기를 준 게 개츠비였거든요. 미국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고, 뉴요커들이 논하기 좋은 소설이니 그들 것으로 승부하려는 거죠. 계획대로 가고 있으니 예술적 완성도도 자신 있습니다.”
한없이 가벼워진 세상에서 개츠비처럼 묵직한 작품이 트렌드는 아니다. 하지만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안 붙었을 터. “브로드웨이도 최근엔 주크박스나 무비컬처럼 가벼운 작품이 많죠. 하지만 정면승부하기로 한 이상, 나를 믿고 갈 겁니다. 개츠비의 지고지순한 서사에 매력을 느껴요. 한 여자를 향한 사랑에 모든 걸 헌신한 사람이잖아요. 저도 개츠비처럼 한 번의 운명적 만남에 의해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고, 그게 제겐 뮤지컬이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포스터. [사진 오디컴퍼니]
K콘텐트가 글로벌을 점령한 시대, K뮤지컬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역사상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엔터테인먼트가 뮤지컬 ‘라이온킹’일 정도다. 짧게 끓어오르는 영상 콘텐트와 달리, 뮤지컬은 장기적인 IP비즈니스로 전세계에 토착화되면서 무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실제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런던과 뉴욕에서 80년대부터 최근까지 장기공연을 했다.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킹’을 창작자들끼리 만든 건 아니다. K뮤지컬의 미래도 프로듀서에게 달렸다.
“‘개츠비’는 여러 의미를 가질 거예요.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리드 프로듀서가 성공한 첫 사례가 되면, 우리 창작진이 진출할 강력한 계기가 되겠죠. 한국에선 프로듀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 못하는데, 창작과 제작은 다른 차원이거든요. 요즘 지원사업이 많으니 작품은 쏟아지지만, 워크샵 정도의 작품에 돈을 주고 창작자에게 제작까지 하라고 하니 거품만 키우고 있죠. 그게 뭉쳐서 매출이 되니 시장이 커 보이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모든 책임을 지는 프로듀서를 키워야죠. 브로드웨이도 프로듀서가 안 가면 창작자도 못 갑니다.”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장으로서 그가 지적한 한국 시장의 문제점은 자전거 페달 밟듯 위태롭게 이어가는 제작 관행이다. 반면 브로드웨이에서는 100% 펀딩이 돼야 작품을 올릴 수 있고, 그게 프로듀서 역할이란 것이다. “저도 장기적으로 함께 할 파트너를 찾고 있어요. 콘텐트 비즈니스에 대한 안목을 공유하면 우리도 K팝의 하이브처럼 될 수 있을 거예요. 무대예술은 길게 봐야 하는 비즈니스죠. ‘라이온킹’ 매출이 20년간 10조라니 1년에 5000억 꼴인데, 우리나라 전체 뮤지컬시장 매출(지난해 4253억원)보다 크잖아요.”
콘텐트 키우면 ‘하이브’ 처럼 될 것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무대 스케치 컷. [사진 오디컴퍼니]
사실 그는 ‘돈키호테’라기엔 성공한 리더다. 뮤지컬 초창기이던 2000년대 초반, 신인이던 조승우·조정석·홍광호·정성화 등을 과감히 발굴한 ‘지킬앤 하이드’‘맨오브 라만차’ 같은 굴지의 히트작으로 산업 성장을 견인했고, 배우들은 최고 스타가 됐다.
“저는 직관이 발달해 있어요. 감성만으로 밀어붙여 성공한 케이스가 많죠. 스타는 타고난 재능이 기본이지만, 약간의 결핍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생각해요. 조승우는 당시 지킬을 맡기 너무 어렸고, 정성화는 개그맨이었지만, 그들의 강렬한 눈빛에 끌렸어요. 역시 예술은 수학공식처럼 진행되는 게 아니더군요.”
문학소년이었다는 그는 예술가 기질이 다분하다. 원래 꿈이었던 영화와 글쓰기에 대한 로망을 지금도 품고 있지만 ‘개츠비’ 때문에 참고 있단다. 꿈 얘기를 하며 눈빛을 반짝이는 50대 ‘아재’라니. “전 원래 칸에서 ‘아름다운 밤입니다’ 외치려던 사람인데, 너무 힘들 때 잠시 외도라 생각했던 뮤지컬계에서 카메론 매킨토시 같은 프로듀서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죠. 좋은 공연을 보는 문화가 있는 뉴욕, 런던의 불켜진 극장가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거기 내 이름을 단 공연을 걸겠다는 꿈으로 여기까지 왔네요.”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 실패의 원흉은 스스로를 비주류라 생각하고 위축됐던 자신이었다. 이제 “내가 주류”라고 믿기로 했다는 그는 실패도 겁내지 않았다. “전에는 문화적 차이를 크게 생각하고 저들에게 적응하려다 실패했어요. 지금은 제가 한국에서 성공한 방법대로 밀고 가고 있어요. 프로듀서가 방향성 정해서 끌고 가는 힘은 똑같거든요. 물론 흥행은 모르는 거죠. 전쟁이 날지 바이러스가 터질지 알 수 없지만, 이번엔 작품성에 대한 평가만큼은 자신있어요. 그러면 흥행과 별개로 앞으로 나갈 수 있거든요.”
과연 이번엔 브로드웨이라는 풍차를 제대로 들이받을 수 있을까. ‘이룰 수 없는 꿈’(뮤지컬 ‘맨오브 라만차’의 대표 넘버) 뒤에는 또 뭐가 있을까. 그는 “이제 좀 개츠비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경영에서 손 떼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그래야 프로듀서를 더 잘할 수 있고, 영화 찍을 여력도 생길 테니까요. 언젠간 소설도 써야 되거든요.(웃음) 돈키호테 같다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행복합니다. 돈키호테나 개츠비가 말도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3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