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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선데이] ‘드림보이’ 신춘수의 담대한 도전
- 작성일2024/07/01 09:36
- 조회 668
미국에는 각 장르를 대표하는 이름난 상이 있는데 토니상도 그중 하나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여성 연극인의 이름에서 유래한 토니상은 한 시즌 동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뮤지컬과 연극이 대상이다. 매년 4월 25일까지 브로드웨이 극장에 오른 작품 중에서 부문별 수상작과 수상자를 뽑아 6월에 시상한다.
올해 77회를 맞은 토니상에서는 한국 출신 예술가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린다 조와 김하나가 각각 뮤지컬 의상상과 조명상을 받았다. 린다 조가 이미 10년 전 같은 상을 탄 베테랑이라면 김하나는 신예다. 수상자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디자이너다.
아카데미영화상(영화 ‘기생충’)이나 에미상(OTT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비견되는 굵직한 상을 한국 출신들이 타는 걸 보면, 우리 뮤지컬이 ‘세계 뮤지컬의 성지’ 브로드웨이를 석권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꾸준한 도전의 역사가 그런 기대감을 심는 배경이다.
국내 뮤지컬 제작사 ‘빅5’ 중 하나인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기대를 현실화하는 프로듀서(PD)다. 이번 토니상 의상상은 신 PD가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에서 나왔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계획하고 노력한 15년 도전의 결과다.
-브로드웨이서 성공 위해 15년 노력
-‘위대한 개츠비’로 올해 토니상 수상
-주간 매출 100만 달러 흥행도 성공
-세 번의 실패 딛고 일어선 ‘3전4기’
신 PD는 2009년부터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 세 차례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해 끈질기게 재기를 모색했다. 첫 작품 ‘드림걸즈’는 브로드웨이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미국 내 투어에 그쳤다. 5년 후 절치부심 끝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와 ‘닥터 지바고’는 한 달여 만에 막을 내렸다. 흥행 참패였다.
불굴의 돈키호테 같은 신 PD에게 토니상을 안긴 ‘위대한 개츠비’는 브로드웨이 도전에 나선 세 번의 실패 후 찾아온 ‘3전4기’의 성공이다. 4월 25일 브로드웨이 시어터 개막 후 주간 박스 오피스 매출액 집계에서 줄곧 10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고 한다.
이 ‘원 밀리언 클럽’은 브로드웨이 롱런의 지표다. 돈이 모든 걸 말하는 브로드웨이에서 주당 매출액이 이 정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극장주는 당장 극장 셔터를 내린다. 인정사정 없는 흥행 전선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신 PD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된 것이다. 현재 뉴욕에 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성공할 줄 알았나?
“아직 기대는 이르다. 다만 미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담대함에 많은 찬사를 보내는 것 같다.”
주당 매출액 100만 달러는 왜 중요한가.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보증수표니까. 결과가 좋아서 개막 1주년이 되는 내년 5월까지 티켓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신 PD에게 브로드웨이는 어떤 의미인가?
“한국 뮤지컬 글로벌화의 증표이자 상징이다.”
한국 뮤지컬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브로드웨이를 노크했다. 1997년 에이콤의 ‘명성황후’는 링컨센터 무대에 올랐고,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뮤지컬 ‘라보엠’의 공동 프로듀서로서 뉴욕의 PD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송승환이 이끄는 ‘난타’의 브로드웨이 입성도 우리 공연사에 의미 있는 발자국이다. 이런 전력과 비교해도 신 PD의 ‘위대한 개츠비’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전권을 쥐고’ 자기 뜻을 관철했다. 투자금을 모으고 창작팀을 꾸리고, 극장을 대관하는 등 모든 프로세스를 주도했다는 의미다. 뮤지컬 같은 흥행예술은 큰 위험을 감수할수록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승자독식의 세계여서 힘 있는 판단이 중요하다. 신 PD의 오디컴퍼니는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 등 흥행 레퍼토리가 많다. 검증된 레퍼토리로 국내 시장에서 쉽게 돈을 버는 대신 무모하지만 원대한 꿈을 택한 신 PD를 나는 꿈을 찾는 소년 ‘드림보이’라 부르고 싶다.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무대 의상 디자이너로 미국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인 교포 2세가 있다. 99세의 나이로 2016년에 세상을 떠난 윌라 김이 평소에 한 말이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정재왈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9922
올해 77회를 맞은 토니상에서는 한국 출신 예술가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린다 조와 김하나가 각각 뮤지컬 의상상과 조명상을 받았다. 린다 조가 이미 10년 전 같은 상을 탄 베테랑이라면 김하나는 신예다. 수상자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디자이너다.
아카데미영화상(영화 ‘기생충’)이나 에미상(OTT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비견되는 굵직한 상을 한국 출신들이 타는 걸 보면, 우리 뮤지컬이 ‘세계 뮤지컬의 성지’ 브로드웨이를 석권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꾸준한 도전의 역사가 그런 기대감을 심는 배경이다.
국내 뮤지컬 제작사 ‘빅5’ 중 하나인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기대를 현실화하는 프로듀서(PD)다. 이번 토니상 의상상은 신 PD가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에서 나왔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계획하고 노력한 15년 도전의 결과다.
-브로드웨이서 성공 위해 15년 노력
-‘위대한 개츠비’로 올해 토니상 수상
-주간 매출 100만 달러 흥행도 성공
-세 번의 실패 딛고 일어선 ‘3전4기’
신 PD는 2009년부터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 세 차례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해 끈질기게 재기를 모색했다. 첫 작품 ‘드림걸즈’는 브로드웨이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미국 내 투어에 그쳤다. 5년 후 절치부심 끝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와 ‘닥터 지바고’는 한 달여 만에 막을 내렸다. 흥행 참패였다.
불굴의 돈키호테 같은 신 PD에게 토니상을 안긴 ‘위대한 개츠비’는 브로드웨이 도전에 나선 세 번의 실패 후 찾아온 ‘3전4기’의 성공이다. 4월 25일 브로드웨이 시어터 개막 후 주간 박스 오피스 매출액 집계에서 줄곧 10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고 한다.
이 ‘원 밀리언 클럽’은 브로드웨이 롱런의 지표다. 돈이 모든 걸 말하는 브로드웨이에서 주당 매출액이 이 정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극장주는 당장 극장 셔터를 내린다. 인정사정 없는 흥행 전선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신 PD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된 것이다. 현재 뉴욕에 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성공할 줄 알았나?
“아직 기대는 이르다. 다만 미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담대함에 많은 찬사를 보내는 것 같다.”
주당 매출액 100만 달러는 왜 중요한가.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보증수표니까. 결과가 좋아서 개막 1주년이 되는 내년 5월까지 티켓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신 PD에게 브로드웨이는 어떤 의미인가?
“한국 뮤지컬 글로벌화의 증표이자 상징이다.”
한국 뮤지컬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브로드웨이를 노크했다. 1997년 에이콤의 ‘명성황후’는 링컨센터 무대에 올랐고,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뮤지컬 ‘라보엠’의 공동 프로듀서로서 뉴욕의 PD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송승환이 이끄는 ‘난타’의 브로드웨이 입성도 우리 공연사에 의미 있는 발자국이다. 이런 전력과 비교해도 신 PD의 ‘위대한 개츠비’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전권을 쥐고’ 자기 뜻을 관철했다. 투자금을 모으고 창작팀을 꾸리고, 극장을 대관하는 등 모든 프로세스를 주도했다는 의미다. 뮤지컬 같은 흥행예술은 큰 위험을 감수할수록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승자독식의 세계여서 힘 있는 판단이 중요하다. 신 PD의 오디컴퍼니는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 등 흥행 레퍼토리가 많다. 검증된 레퍼토리로 국내 시장에서 쉽게 돈을 버는 대신 무모하지만 원대한 꿈을 택한 신 PD를 나는 꿈을 찾는 소년 ‘드림보이’라 부르고 싶다.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무대 의상 디자이너로 미국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인 교포 2세가 있다. 99세의 나이로 2016년에 세상을 떠난 윌라 김이 평소에 한 말이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정재왈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9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