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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도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올해가 뮤지컬 산업화 원년”
    • 작성일2022/01/05 11:28
    • 조회 1,894
    • 송승환 고문ㆍ신춘수 회장 인터뷰
      제작사 25개 모여 한목소리…협회 출범

      연간 4000억원 규모ㆍ공연 시장 78% 차지
      합리적 제작 시스템, 건전한 생태계 구축
      한국 시장에 맞는 룰ㆍ모태펀드 필요
      “2022년이 뮤지컬 산업화 원년”
    한국 뮤지컬의 성장을 이끈 1세대 프로듀서를 비롯한 25개 제작사가 모여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를 출범했다. 고문을 맡은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왼쪽)는 “협회 출범과 함께 올해는 한국 뮤지컬 산업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내 1세대 뮤지컬 프로듀서로 꼽히는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는 1996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를 올렸다. 주인공은 당시 “노래 좀 하는 배우”로 꼽힌 최수종 엄정화. “그때는 뮤지컬 배우가 없었어요. 두 사람과 열흘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기간 이상 대관을 한다 해도 관객을 채울 자신이 없었어요.” 송 대표는 “20여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시장은 규모, 관객 면에서 엄청나게 커졌다”며 “브로드웨이가 50년 동안 한 것을 우리는 20년 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2001년 한국에 상륙한 ‘오페라의 유령’을 계기로 국내 뮤지컬 시장은 일대 변화를 맞았다. 7개월의 장기 공연 기간 동안 24만 명의 관객을 동원, 192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 작품과 함께 시장은 도약했다. 2000년까지만 해도 140억 규모였던 뮤지컬 시장은 1년 만에 400억원 규모로 몸집을 불렸다. 해마다 성장해 2006년 1000억원, 2008년 2000억원, 2010년 3000억원까지 늘었다. 2021년 기준 4000억원을 가뿐히 넘어선 업계는 공연 시장 전체 매출의 약 78%를 차지하고 전체 시장을 떠받치는 산업이 됐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성장한 뮤지컬 시장은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업계의 성장은 각자의 자리에서 매진한 프로듀서들과 제작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송 대표는 “선후배와 동료 프로듀서의 역량이 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든 윤호진 에이콤 총예술감독,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의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오페라의 유령’의 설도윤 에스엔코 예술감독 등과 같은 1세대 프로듀서와 그 뒤를 잇는 엄홍현 EMK엔터테인먼트 대표(‘레베카’, ‘모차르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지킬 앤 하이드’, ‘드라큘라’) 등 2세대 프로듀서가 있었다. 지난 20여년 업계를 이끈 이들은 “뮤지컬 제작 전반을 좌우하는 프로듀서들의 도전 정신”, “한국인의 창의성”(송승환 대표)이 시장의 질적 팽창을 이끌었다고 봤다. 여기에 “삼성, 롯데, CJ 등의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고, “소득수준이 높아져 문화적 욕구가 커지며”(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지금 뮤지컬 업계는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았다. 각자도생으로 업계의 성장을 일군 25개 제작사들이 다시 뭉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를 세웠다. 대형 제작사는 물론 대학로에서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중소제작사도 함께다.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난타’를 세계적 공연으로 만든 송승환 대표는 협회의 고문을 맡았다. 최근 정동극장에서 만난 그는 “협회 출범과 함께 올해는 한국 뮤지컬 산업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승환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 고문은 “20여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시장은 규모, 관객 면에서 엄청나게 커졌다”며 “브로드웨이가 50년 동안 한 것을 우리는 20년 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 성장 뒤에 드러난 허약한 토대…‘합리적 시스템’ 정립 필요
     
    한국 뮤지컬의 급격한 성장 뒤엔 그림자가 짙었다. 뮤지컬계 구심점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전례 없는 감염병이 당도하면서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공연계는 지난 2년간 허약한 토대를 드러냈다. 일자리를 잃은 스태프와 앙상블 배우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한 부실 제작사들이 늘어갔다. 화려한 성장의 이면이 드러낸 업계의 맨얼굴은 초라했다.
    “기형적 성장을 이룬 한국 뮤지컬 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아요. 성장 속도와 달리 정책적으로 정립된 부분이 없어 제작 과정의 불안정성이 도사리고 있죠.” (신춘수)
    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대형 뮤지컬 제작사를 중심으로 지난 20년 동안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공동의 목적으로 뮤지컬 산업을 발전시킬 여력은 없었다”며 “뮤지컬 시장의 존폐 위기 속에서 제작자들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협회가 출범한 것은 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뜯어고치고, 건전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송 고문은 “협회는 뮤지컬 시장의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시장의 산업화를 위해 해외 시장 진출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브로드웨이처럼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키워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공익을 창출한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선 과제는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의 정립이다. 협회 발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업계는 제도와 정책의 부재를 목격했다. 신 회장은 “각사마다 계약 방식, 제작 방식도 다른 데다 기본적 가이드라인도 없었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각사가 만들어둔 계약서를 모아 논의하는 단계다.
    주류 시장인 브로드웨이는 벤치마킹의 대상이나, 송 고문은 “무조건 브로드웨이 식이 아닌 한국 시장에 맞는 정책과 제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앙상블 배우의 최소 출연료 정책, 위기 상황에서 생계를 보존할 수 있는 연금이나 보험 등의 보조 장치 등은 한국 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참고사항이나, 기본적으로 두 시장은 제작환경부터 천지 차이다. 송 고문은 “로열티 등 여러 사안을 정립하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을 협회 초창기에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오른쪽)는 “대형 뮤지컬 제작사를 중심으로 지난 20년 동안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공동의 목적으로 뮤지컬 산업을 발전시킬 여력은 없었다”며 “뮤지컬 시장의 존폐위기 속에서 제작자들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 독립 장르로 인정·산업화 초석…“모태펀드 만들 계획”
    협회 출범과 함께 지난 연말엔 뮤지컬이 독립 장르로 인정되는 ‘공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간 뮤지컬은 연극의 하위 장르로 인식, 수천억 규모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신 대표는 “장르의 독립은 산업화의 시작”이라며 “뮤지컬이 마침내 하나의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첫 걸음을 뗐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지금의 뮤지컬 시장은 한국영화 성장 초창기인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수준이라고 본다.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커졌지만, 제작 방식을 뜯어보면 눈에 보이는 성과에 비해 터무니없이 뒤처졌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한국영화는 제작 환경이 열악하고, 콘텐츠의 수준은 많이 떨어졌어요. 당시엔 시나리오 하나가 들어오면 차라리 TV 문학관을 하는 것이 낫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다 정부가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독립시킨 후 산업의 개념으로 보고 다양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 지금의 꽃을 피울 수 있었어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기본 법이 만들어지며 안정적인 제작환경이 마련된 거죠.”(송승환)
    반면 현재의 뮤지컬 시장은 규모가 무색하게도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편당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대형 뮤지컬은 실패의 위험부담으로 성공을 담보한 콘텐츠를 답습한다. 제작사가 모든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기존의 히트작, 스타 배우 위주의 작품이 무대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시장의 다양성 부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프로듀서가 집 팔고 빚 내서 작품을 올리니” 도전이나 실험은 먼 나라 이야기다.
    송승환, 신춘수(오디컴퍼니 대표)가 23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신 대표는 “뮤지컬의 제작환경이 불안정한 것은 안정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협회를 통해 뮤지컬에만 투자할 수 있는 정부 모태펀드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 초창기에 만들어진 ‘우선손실충당 펀드’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정부도 투자해 손실액을 우선 충당, 민간 투자자의 안전성을 확보해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손해를 감수한다면 다른 민간 펀드가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협회의 생각이다.
    송 고문은 “건전한 자금이 들어와 제작과 투자가 분리되면 제작사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해체되니 조금 더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다”며 “투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국내 뮤지컬 계엔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가 추진하는 ‘한국형 모태펀드’는 실현 가능성이 충분하다. 잘 만든 콘텐츠 한 편이 길게는 20~30년 이상 장수하는 긴 수명은 투자자를 설득하기에도 좋은 요소다. 1997년에 제작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난타’, 올해로 21주년을 맞으며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시카고’, 스테디셀러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나 ‘맨 오브 라만차’ 등이 대표 사례다. 송 고문은 “영화와 달리 연극, 뮤지컬은 라이프사이클이 길어 어찌 보면 리스크가 적은 산업이다”라며 “영화의 투자기간을 1년으로 본다면 뮤지컬은 5년으로 보고 있는 만큼 초기 적자가 나도 2년차 이후엔 흑자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어요. 정부의 지원으로 한국영화에 좋은 인재가 모이고 자본이 들어와 불안정성이 사라지며 기회가 커졌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성을 제거해 건강한 제작과 투자가 이뤄진다면 한국 뮤지컬 역시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춘수)



    [출처] 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2201050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