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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오디, 문을 열다_프로듀서 신춘수
- 작성일2019/10/3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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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문을 열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오디컴퍼니의 오늘에 이르는 여정에 대해 말한다.
“외로움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고.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도진영
오디컴퍼니의 대표 신춘수의 집무실은 소박했다. ‘회장님’스러운 세련되고 거대한 가구가 있을 법한 자리에는 대신 주인과 오랜 세월을 보낸 티가 역력한, 멋스럽게 낡은 나무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예술서적과 포스터, 배우들의 포트레이트, 지난 작품의 아트워크가 이곳 저곳에 놓인 공간은 제작사 대표의 집무실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아틀리에라는 설명이 더 잘 어울렸다. 여기에는 그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책상 벽에 걸린 그림도 한몫을 했다. 가로로 길게 걸려있는 작품은 그와 여러 작품을 함께 작업한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가 선물한 것이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을 포착한 듯한 그림으로, 끝없이 펼쳐진 눈밭 가운데 고독하게 걸어가는 한 남자가 그곳에 있다. 신춘수 대표가 말했다. “정 디자이너가 선물하면서 그러더군요,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이 꼭 저를 닮았다고.” <닥터 지바고>는 시드니(2011)와 서울(2012)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브로드웨이(2015) 그리고 다시 서울(2018)에 이르기까지 그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작품이다. 그가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한 두 번째 브로드웨이 진출작이었지만, 조기종영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어서일까. 그림 한 점에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오디컴퍼니, 그리고 프로듀서 신춘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꿈으로 이어졌다.
집무 공간에 그림을 걸어놓은 자체가 <닥터 지바고>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 기간 브로드웨이에서 프로덕션을 계획했던 작품이잖아요. 흥행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도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마니아를 얻었죠.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갔지만 실패했죠.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내가 달리 만들어보겠다고 했는데 역시 실패했지만, 잘해보고 싶었던 작품이고 애정이 있는 작품입니다.
지난 9월에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프리미어 형식으로 공연되었죠. 유럽 무대에서의 성공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까.
사실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유럽 쪽에서는 끊임없이 <닥터 지바고>에 대한 관심을 보내오고 있고, 각 나라 색깔대로 프로덕션을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가 라이선스를 주는 방식이죠. 웨스트엔드의 경우 정식 공연으로 선보인 건 아니기에 저 역시 향후의 행방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실패했다고 영국에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집무실 책상에 놓인 책들 중 소설 <위대한 유산>과 만화 <이노센트> 등이 눈에 띄더군요. 책에서 오디컴퍼니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요?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말 다양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소설은 고전을 많이 읽는 편인데, 지금은 <위대한 개츠비>를 끝내고 <폭풍의 언덕>을 읽는 중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그 다음에 읽으려고 꺼내둔 책입니다. <이노센트>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라 뮤지컬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고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문학성을 기반으로 하는 고전에 매력을 느낍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정말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레 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처럼요. 그러나 자극적인 소재들이 주를 이루는 요즘 공연계의 트렌드는 아니죠. 사실 정말 좋은 소설은 뮤지컬로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폭풍의 언덕>을 공연으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소설 속에서 섬세하게 묘사되는 인물들의 내면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수단은 음악적인 요소밖에 없거든요. 그러면서도 상당 부분이 인물들의 사랑에 포커스가 맞춰질 수밖에 없죠. 문장으로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요즘은 동화책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동화는 줄거리가 길지 않으면서도, 줄거리 사이 사이에 여백이 많지 않습니까. 뮤지컬이나 뮤지컬 영화, 나아가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은 동화를 찾고 있습니다.
문득 프로듀서 신춘수의 개인 취향이 궁금합니다.
저는 ‘옛날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 <맨 오브 라만차> <레 미제라블> <아가씨와 건달들>… 이 작품들의 음악을 들으면 항상 좋은 기분이 듭니다. 제가 우울할 때 가장 많이 듣는 곡도 <마이 페어 레이디>의 서곡이고요. 음악이 저를 좋은 세계로 끌어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이런 고전 뮤지컬이 음악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요즘 공연은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지만, 이런 고전 작품도 관객들에게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제작한다면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자 입장에서도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컴퍼니가 선보인 작품 중에서도 그런 도전을 했던 작품이 있을까요.
대표적인 작품이 <그리스>죠. 사실 제 취향과 가장 거리가 먼 작품이기도 합니다(웃음). 2004년 공연은 당시 젊은 관객들에게 제 의도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많은 스타 배우들이 탄생했고, 뮤지컬 관객층을 넓힐 수 있었죠. 또 스티븐 손드하임의 <어쌔신>도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같은 작곡가의 <스위니 토드>가 정말 잘 되고 있지만, 그때는 무려 2003년이었거든요. 손드하임의 작품을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의도만으로 도전한 거죠. LG아트센터에서 무대를 호수로 채우고, 2층 객석은 막아 놓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했던 <갈매기(2007)>도 그랬고요. 뒤의 두 작품은 흥행과는 관계없이 제 취향이 반영된 공연이었죠. 앞으로 손드하임 작품은 계속 선을 보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뮤지컬 <그리스> (2004)
뮤지컬 <어쌔신>
손드하임 이야기가 나왔으니 <스위니 토드> 이야기를 해 볼까요. 2007년 한국 초연 당시는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한 작품입니다. 왜 2016년과 2019년 공연에서는 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작의 방향이 확실했다고 봅니다. 저는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고, 작품의 본질은 흐리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스위니 토드>는 손드하임의 뮤지컬 중 대중적인 작품에 속합니다. 난해하고 불친절한 느낌보다는 원작이 가진 블랙코미디, 음악의 구조, 가사의 전달성을 높이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전달이 잘 될 수 있게 가사와 대사를 각색했고, 이를 가장 설득력있게 표현해줄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2016년에 무대를 복잡한 장치 없이 비워두었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이었습니다. 관객들이 무대에 현혹되지 않고 등장인물과 상황에만 집중한다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공연에서는 반대로 런던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무대로 선을 보였죠. 손드하임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재미있을 것이라고 보는데, 관객분들이 그 묘미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공연에서의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공연의 성패를 알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두 번째 공연까지는 몹시 긴장해서 거의 언 상태로 공연을 보거든요. 관객들의 반응을 살필 여유가 없습니다. 공연이 연습대로, 의도대로 전달이 잘 되느냐, 또 그간 준비하면서 있었던 문제들 없이 무사히 공연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죠.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관객들의 표정이나 리뷰를 보고 반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프로듀서에게 첫 공연처럼 긴장되는 순간이 또 있을까요.
창작진이 한 자리에 처음으로 모이는 첫 연습날도 긴장이 됩니다. 낯선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한 곳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맡는 입장에서 어떻게 이들을 잘 끌어가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첫 인사인 만큼 멋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대부분 그렇게 안 됩니다. 다만 요즘 들어서 꼭 하는 말이 있다면 “행복한 작업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연습을 통해 알 수 없는 화학작용이 일어나거든요. 공동 작업에서 누군가가 힘들다면 전체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흥행에 성공해도 팀의 일원이 불행하다면 프로덕션도 행복하지 않고요. 그래서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배려하자는 것만큼은 늘 당부합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 (2016)
작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쭤보죠. 작품마다 내로라하는 뮤지컬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배우에게 작품의 가치와 방향성을 설명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배우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되면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설득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제안하지 않아요. 이와는 별개로 요즘 들어서는 저희와 작업을 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작업 분위기가 따뜻하다 보니, 다른 작품을 할 때 각을 세웠던 배우들도 저희와 함께하면 편안하게 작업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배우가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해오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캐스팅이 용이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이 좋다고 꼭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덧붙이자면 오디컴퍼니는 주역과 앙상블,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를 동일하게 대우합니다. 배려를 강조하는 것도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고요. 이런 점에서 세심하려고 노력하는 제작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출로 참여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도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연출가 신춘수와 프로듀서 신춘수는 어떻게 다릅니까.
연출가의 삶과 프로듀서의 삶은 굉장히 다릅니다.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배우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듀서일때는 “마음으로 연기해!”하고 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처음 연출할 때 배우에게 디렉션을 줬더니 그렇게 안 움직여진다는 거예요. “왜? 왜 이게 안돼?” 했더니 저보고 해보래요. 제가 해봤더니 정말 안 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일방적으로 배우들에게 부족한 것을 이야기하는 입장이었다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통해 처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된 거죠. 영화 <멋진 인생>을 감독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독인 동시에 출연배우이기도 했으니까요. 직접 해보니까 어찌나 힘들던지요. 그때부터 배우 스태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만큼 특별히 기대할 부분이 있을까요.
새로운 변화는 없고, 지금까지 그랬듯 담백하고 소박한 공연으로 올리려고 합니다. 만약 제 마음대로 큰 변화를 가져오면 기존의 작품 팬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작품과 공유해온 추억과 감성이 사라지는 기분일 테니까요. 더구나 2인극인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두 배우의 드라마와 정서지 무대 매커니즘은 아니니까요.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여러 면에서 선물 같은 공연이기를 바랍니다. 팬들의 지지가 아니었다면 10주년을 맞이하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간의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도 함께 나누고, 지금까지 참여했던 많은 배우들과 함께 콘서트를 하는 등 10년 동안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는 공연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2018)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포함해 오디컴퍼니에는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 오랜 기간에 걸쳐 공연되어온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관객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프로덕션에 좋은 배우들을 참여시키려고 노력을 했고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연출도, 배우들의 감정선도 디테일해지면서 점점 깊어졌고, 관객들도 더 많은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무대의 변화는 없는데, 어린 시절 추억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를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때문에 관객들도 무대가 단순한 세트가 아닌 10년 동안 쌓인 추억과 감정으로 바라봐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기획과 프로덕션에서 긴 호흡을 가지고 만들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최대한 완성도를 높여서 장기적으로 공연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손익분기점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제작비를 들였습니다. 당연히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죠. 실제로 초연에는 적자를 봤어요. 당시에는 ‘뮤지컬 시장’이라고 부를 만한 소비자층이 없었을 때니까요.
당시에 장기간 공연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멀리 봤을 때 우리나라의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봤고, 지금에만 맞춰서 제작하면 놓치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장기적인 관점과 과감한 결정이 10년 뒤에 큰 성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닥터 지바고>도 계속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 공감을 얻지는 못했죠. 그래도 배우들은 계속 하고 싶다더군요. 그래서 (조)승우와 (박)은태에게 그랬죠. “조그만 극장에서, 돈 안 받고 해도 괜찮겠니? 그럼 나도 각오해 볼게”라고(웃음). 사실 저도 그런 형식의 공연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관객들 역시 작품의 본질을 더 잘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말씀을 들으니 <닥터 지바고> 무료 공연을 기대해보게 되는데요.
무료 공연은 아니지만 상업적이지 않은 공연이었으면 합니다. 단 조건이 있어요. 뛰어난 연출과 배우가 모여야 하죠. 대극장의 현란한 세트가 없는 빈 공간을 유니크하게 채워내려면요. 관객은 400~5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보게 되겠죠. 언젠가는 그런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 작품만 이런 방식으로 공연해도 저희가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와 제작사가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관객을 위한 공연을 하는 거죠.
한국에서 가장 먼저 브로드웨이 진출을 시작했던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래 전에는 브로드웨이에서의 작업을 꿈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제는 현실이죠. 데뷔도 했고 브로드웨이 리그의 정회원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아직은 한국에서처럼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죠.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 <닥터 지바고> 이후로 브로드웨이에서 세 번째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타이타닉>이에요. 공연을 위해 현지에 유한책임회사(LLC)도 설립했습니다. 이번 작품이 성공하면 좋은 파트너,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앞선 두 작품의 작업을 통해 얻은 자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미국에서 저는 이름 모를 신인 제작자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경력이 전무한. 때문에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많이 외롭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져서 한 호텔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도어맨이 저에게 비키라는 겁니다. 안 그래도 미팅이 잘 안 풀려서 화가 나던 상황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눈물이 주룩주룩 나더라고요. 하도 서러워서. 그리고 정말 많이 걸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는데 풀 방법이 없으니 무작정 걸었죠. 아마 뉴요커 외에 센트럴파크를 그렇게 많이 걸은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그렇게나 많다는 점이 저를 참 외롭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 작품을 해냈고, 덕분에 제작자로서의 크레디트(credit)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얼마 전 알리바바 그룹의 마이라이브와의 협약으로 <지킬 앤 하이드>를 비롯해 오디컴퍼니의 라이선스작을 꾸준히 중국에서 공연하는 성과를 거두셨죠.
사실 마이라이브 외에도 여러 회사에서 <지킬 앤 하이드>를 올리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중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알리바바와 계약을 하게 되었죠. 우리의 시스템 전체를 가져가는 레플리카 버전의 수출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10월 말에는 직접 중국 오디션에 참가해 배우를 선발할 예정입니다. 좀 더 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 진출에 있어서도 상당한 메리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의 아시아 지역 권리가 오디컴퍼니에 있다는 것은 미국 공연계에도 신뢰를 안길 수 있을 테니까요. 알리바바와 함께 미국에 합작 회사를 설립하자는 이야기도 지속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오디컴퍼니는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여러 편 가진,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제작사 중 한 곳입니다. 그런 오디컴퍼니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겠죠.
위기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항상 긍정적이었어요. 흥행이 안 되는 작품도 있었지만 한번도 실패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만든 작품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회사로서는 어려움이 많았죠. 대표가 <갈매기>를 만들겠다는데 2층 객석을 막으래, 이게 수익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거침없었고,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늘도 도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기가 닥치면 홈런이 나왔고, 정말 위험하면 또 대박이 터졌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순간에도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었죠. 또 힘들 때마다 흑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거침없이 저에게 큰 돈을 빌려주신 분들도 있었어요. 아마 저의 자신감을 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 또한 복이죠. 지금은 갚아야할 것만 남았어요. 컴퍼니 식구들, 도와주신 분들, 또 관객분들께서 저의 부족함을 채워주셨으니까요.
사정이 어려운 회사에 큰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인데, 무엇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어떤 작품에 대해 실패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는 긴 여정에 하나의 단계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런 태도가 상대방에게도 전해졌겠죠. 그리고 정말로 공연만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풍족할 때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하다못해 재테크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니까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은 제가 이렇게 공연에만 몰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알고 계셨죠. 저 또한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2002년에 <킹 앤 아이>를 공연하고 부채가 8억이 생겼는데, 5~6년에 걸쳐서 꼬박 갚았습니다. 빚을 진 그룹의 공연사업부가 없어지자 같은 회사의 외식사업부로 계속 돈을 갚았어요. 아마 이런 정직함도 하나의 자산으로 생각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억’이라는 단위의 빚 앞에서 담대하기란 어렵지 않습니까.
하하, 이런 얘기하면 오디컴퍼니에 투자 안 하실 것 같은데. 저는 지금도 우리 회사 계좌의 비밀번호를 모릅니다. 지금은 그나마 좋아졌지만, 워낙 숫자에 대한 개념이 밝은 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통장에 왔다갔다 하는 돈은 그저 숫자이지 제 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저 제 할 일을 했을 뿐이죠. 그러니까 항상 희망에 차 있던 거죠. 어느 정도였냐면, 미국에 처음 진출할 때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우리 회사가 왜 돈이 없어?” 그랬다니까요.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직접 결재를 맡게 되었는데 그때야 알았죠. 우리 회사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결재를 시작한 이후로 인생에서 행복을 조금 잃어버렸습니다(웃음).
내년을 포함해 앞으로의 오디컴퍼니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2020년에는 <드라큘라>와 <맨 오브 라만차>를 공연할 예정입니다. 아마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창작 작품을 선보일 것 같아요. 한동안 미국에서만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해왔는데, 한국에서도 먼저 선을 보이려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캡틴 니모>라는 제목이고, 소설 <해저 2만리> 소설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한 뮤지컬입니다. 2021년 정식 공연을 목표로, 내년에는 관객들 앞에서 리딩 작업까지를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향후 어느 시장에서든 경쟁력 있는 제작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공격적으로 창작 뮤지컬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회사를 떠난 신춘수 개인으로서의 꿈은 무엇인가요.
프로듀서로서는 브로드웨이에 가면 항상 제 작품이 걸려있으면 좋겠어요. 또 오디컴퍼니가 저 없이 국내외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로 영원하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뮤지컬 영화를 감독하거나 제작하고 싶은 바람도 있고요. 인간으로서는 좀 쉬고 싶어요.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은 덕분인데, 정작 저는 돌려주는 일은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야 딸 덕분에 연습을 하는 중이죠. 개인으로, 또 공연으로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려고 생각 중입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말하고 나면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겠습니까?(웃음)
출처(theatre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