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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수 “오디 20주년, ‘지킬&하이드’ 초연 첫날이 가장 기억나”
    • 작성일2021/04/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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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수 “오디 20주년, ‘지킬&하이드’ 초연 첫날이 가장 기억나”

    코로나19 계기로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 출범 후 회장 추대 “생태계 위해 시스템 개선 필요”

     
    신춘수 오디 컴퍼니 대표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2004년 7월 24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 이날 배우 조승우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하이드’의 한국 초연은 한국 뮤지컬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은 ‘뮤지컬 대중화’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됐다. 스타 마케팅을 통한 한국 뮤지컬 시장의 외연 확장은 이 작품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킬&하이드’를 비롯해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드라큘라’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 여러 히트작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을 견인해 온 오디 컴퍼니㈜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조승우의 ‘지킬&하이드’가 일으킨 신드롬

    “지난 20년간을 되돌아봤을 때 ‘지킬&하이드’ 초연 첫날의 관객 반응이 가장 기억납니다. 당시는 지금만큼 SNS가 활발하지 않았는데도 공연 직후 신드롬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한국 뮤지컬계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 브로드웨이에서 2009년 협력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드림걸스’의 한·미 합작이 결정됐을 때와 2014년 리딩(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목소리가 들리면 소리쳐)’의 공연이 결정됐을 때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신춘수(53) 대표가 이끄는 오디 컴퍼니는 2001년 4월 6일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로 첫발을 내디뎠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신 대표는 1995년 한국 뮤지컬계 1세대 프로듀서 가운데 한 명인 설도윤의 TNS컴퍼니에서 일을 배운 뒤 독립했다. 회사명인 오디(OD)는 ‘오픈 더 도어(Open the Door)’의 약자로, 관객과 무대가 만날 수 있도록 새로운 문을 열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신 대표의 의지를 담았다.
     
    오디컴퍼니의 '지킬&하이드'(왼쪽)와 '맨 오브 라만차'에 각각 출연중인 조승우. 오디컴퍼니 제공

    “2000년대 전반 한국 뮤지컬 시장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맘마미아’ 등 선배 프로듀서들의 대작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자리를 잡을 때였어요. 당시 저는 오디에서 선배들과는 다른 색깔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과 2005년 각각 초연된 ‘지킬&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오디가 앞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됐죠.”

    오디 컴퍼니는 한국 뮤지컬계에서 해외 뮤지컬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방식 대신 재창작에 가까운 논 레플리카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공을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신 대표는 조승우·김준수·홍광호 등 인기 있는 남자 배우를 앞세운 스타 시스템을 뿌리내리도록 만들었다. 특히 조승우는 2004~2005년 ‘지킬&하이드’ ‘헤드윅’(쇼노트 제작) ‘맨 오브 라만차’에 잇따라 출연하며 뮤지컬계를 좌지우지하는 팬덤을 만들어냈다.

    “‘지킬&하이드’ 초연을 앞두고 조승우를 캐스팅했을 때 실력과 가능성을 겸비한 배우였지만 스타는 아니었어요(2005년 초 영화 ‘말아톤’의 대히트로 조승우의 인기가 급상승했지만 캐스팅 당시엔 개봉 전이었다). 하지만 연습실에서 조승우를 보며 작품의 성공을 확신했죠. 당시 더블 캐스팅된 류정한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마저 조승우의 연기에 감화돼 작품에 더욱 집중했어요. 덧붙여 저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당시엔 젊고 경험이 많지 않았어요. 다들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를 냈어요.”
     
    배우 조승우(오른쪽)는 지난 2012년 오디컴퍼니의 '닥터 지바고'에도 출연했다.
    '닥터 지바고'는 신춘수 대표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올렸지만 평단과 흥행 모두 실패했던 작품이다. 뉴시스

    신 대표는 뮤지컬 프로듀서로서 스타 마케팅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그는 조정석 김우형 등 당시 재능있는 신인 배우들을 주역으로 과감하게 발탁했고, 이들 배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관객을 매료시키며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는 “오디를 만든 이후 지금까지 약 40여 편을 만들었다. 롱런하는 흥행작들도 있지만 실패한 작품들이 더 많다”면서 “솔직히 프로듀서라면 작품의 손익을 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올린 작품들이 적지 않다. 오디 설립 이후 첫 10년간은 프로듀서라기보다는 공연을 좋아하는 ‘공연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하늘이 도왔는지 한 작품이 망하면 다른 작품이 돈을 벌었다”면서 “게다가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분들도 적지 않다 보니 흥행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브로드웨이라는 벽을 실감한 뒤 내실 다지기

    프로듀서라고 하기엔 예술적 기질이 강한 그는 2010년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직접 연출했다. 또 이 작품의 제작기를 필름으로 담아낸 영화 ‘멋진 인생’을 감독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오디에 흥행 레퍼토리들이 축적되자 신 대표는 프로듀서에게 꿈의 무대인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로 처음 도전장을 낸 이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목소리가 들리면 소리쳐)’ ‘닥터 지바고’ 등 여러 작품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국내 뮤지컬 제작자 중 유일하게 공연제작자·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의 정회원이 됐다. 하지만 그가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했던 ‘드림걸즈’는 미국 국내 탐방을 했지만,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지는 못했고, 리딩(leading)프로듀서로 나선 ‘할러 이프 야 히어 미’와 ‘닥터 지바고’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지만 조기에 종영됐다. 결과적으로 2015년까지 이어진 그의 도전은 막대한 적자로 끝났으며 국내 제작사마저 자금난을 겪게 했다. 덕분에 그에게는 ‘한국 뮤지컬계의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신춘수 오디 컴퍼니 대표가 브로드웨이에서 프로듀서 참여한 작품들의 일부. 오디컴퍼니 제공

    “2009년 ‘드림걸스’ 공연을 준비할 때 현지 프로듀서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예술 하세요. 나는 돈 벌 테니까. 당신은 꿈을 꾸고 난 돈을 가질게요’라고. 당시엔 이 말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 후 브로드웨이에서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프로듀서로서 예술과 돈에 대한 감각을 뼈저리게 배운 것 같아요. 현지 제작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과 치밀하지 못한 준비 등으로 프로듀서로서 실패한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리그 정회원이라는 것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도전을 일단 접은 그는 국내에서 오디의 정상화에 집중했다. 무모한 투자를 중단한 뒤 인기 레퍼토리를 올려 빚을 상환하고 투자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그는 “당시 회사에서 결제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무능한 경영자인지 알았다. 이후 오디라는 회사 이름을 책임지기 위해 진짜 일만 했다”면서 “다행히 회사는 재정적으로 탄탄해졌다. 대신 예전 같은 꿈을 꾸지 못하게 된 탓인지 요즘 강박증이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의 한국 공연. 신춘수 대표가 브로드웨이에서 공동프로듀서로서 처음 작업한 작품이다. 오디컴퍼니 제공

    신 대표가 국내 비즈니스에 몰두해 왔다고 해서 브로드웨이 진출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접은 것 같지는 않다. 회사 경영이 다시 궤도에 올라가는 동안 그는 국내외 예술가들과 신작 개발에 나섰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영감을 받은 ‘캡틴 니모’,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셰익스피어 원작을 모노드라마로 만드는 ‘리처드 3세’,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바그다드 카페, 리어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결 구도를 그리며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하는 ‘피렌체의 빛’, 미국 인디 록밴드 플레이밍 립스의 노래를 이용한 주크박스 뮤지컬 ‘요시미 배틀 더 핑크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시간을 가지고 여유있게 완성도를 높일 계획인 이들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해외 무대에서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뮤지컬 시장의 문제 절감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는 이런 작품 개발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뮤지컬 시장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오디를 비롯해 PMC프러덕션, 신시컴퍼니, 클립서비스, 오디컴퍼니,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MK뮤지컬컴퍼니, CJ ENM, 에이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쇼노트 등 대형 제작사 10개가 참여해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를 출범시켰고 신 대표는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오디컴퍼니의 엠블럼.

    “지난해 제작사들이 공연장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위해 처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요. 코로나19라는 예기치 않은 재난과 마주하면서 다들 국내 뮤지컬계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거죠.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난 20년간 고속성장을 해 왔지만 그에 걸맞는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했어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는 앞으로 표준 계약서를 작성하고 합리적 제작방식을 도입해 공연이 중단되고 취소될 때 배우와 스태프에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공연장에 대한 새로운 방역지침은 물론 공연산업 발전을 위한 체계적 정책과 지원을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767139&code=611712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