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개막이 연기된 지 46일 만인 지난 2일 막을 올린 데는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는 배우·제작사·스태프의 한마음 덕이 컸다. 지난 한해 동안 코로나19로 뮤지컬계는 휘청였지만, 공연을 향한 애정과 변화의 필요성 등을 자각하며 새해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지난 1년 동안 한국 뮤지컬계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제2의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도 됐다. 성장하는 시장 규모에 가려져 미처 몰랐거나 모른 척해왔던 문제점이 터져 나오며 업계 관계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운 것이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예기치 못한 재난과 마주하면서 뮤지컬 시스템에 구멍이 많은 현실을 절감했다. 커진 시장에 발맞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 같이 힘을 모으자는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희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뮤지컬계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반전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까?
비대면·온라인 시대인데…뮤지컬 업계는 20년 전 시스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약 4000억원(추정치) 규모였다. 2000년 140억원에 견줘 20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2012년 3000억원대로 진입한 시장 규모는 이후 2018년 3500억원에 머물며 상승폭이 완만해졌다. 업계에서는 이 시기에 공연계가 변화를 꾀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승원 에이치제이(HJ)컬쳐 대표는 “온라인이 중심이 되는 등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는데 뮤지컬 시장은 10~20년 전 상황에 멈춰서 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예매한 티켓을 우편으로 받거나 현장에서 반드시 표로 교환해야 하는 실정이다.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바뀌는 환경 속에서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짚었다.
뮤지컬계는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예매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했다. 방역지침이 ‘일행 간 띄어 앉기’로 완화됐지만 현재의 예매시스템에선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행이 3명이면 세 자리를 예매해야 하지만, 모두 두 자리 예매로 통일해야 했다. 일행 수만큼 좌석을 체크하면 그에 따라 자동으로 좌석 띄어 앉기가 적용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파크, 예스24 등 예매처별로 확보한 좌석이 다른 것도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가 됐다. 한승원 대표는 “누군가 나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지만 그럴 여유가 있는 제작사도 없고 문제의식도 없었다. 띄어 앉기 기준이 수시로 바뀌고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면서 예매시스템 정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온라인 중계가 활성화한 것도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변화다. 업계는 그동안 포털에서 공연을 중계하는 것에 반발해왔다. 공연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고, 공연장의 공기 또한 작품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라는 생각에서다. 한편으론 싼값의 온라인 공연이 확산하면 관객이 현장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상황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시도한 온라인 중계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를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춘수 대표는 “중요한 건 질적 향상이다. 온라인 공연을 촬영할 수 있는 인력·장비를 갖춘 공연장을 만들어 모든 제작사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접목하려는 시도는 공연을 넘어선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연 관련 엠디(MD·기념품이나 굿즈)를 사기 위해 꼭 현장에서 길게 늘어서 줄을 서야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의식도 생겨났다. 한승원 대표는 “인터넷에서 굿즈를 구매한 뒤 현장에서 받아가는 등 관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에이치제이컬쳐가 자체적으로 시도해온 온라인 엠디마켓 ‘문화상회’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필요성을 느낀 제작사 5~6곳이 합류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공연장에서 받아가는 방식인 ‘더픽’ 서비스도 27일부터 시작한다. 한승원 대표는 “그간 정부 지원이 작품을 만드는 데만 한정됐다. 이제는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 외에 공공 앱을 만들어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는 등 서비스 측면을 개선하는 데도 투자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표준계약서·연습비·임금등급…무대 위 약자 위한 체계 갖춰야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가 겪은 가장 큰 혼란 중 하나는 체계적인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연장이 문을 닫거나 공연이 개막 직전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보상을 받을 방법은 거의 없었다. 공공기관을 기준으로,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취소된 공연 건수는 3578건(국민권익위원회 발표)에 이른다. 민간 극장 등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공공 극장(대관료 환불률 94.5%)이 아닌 곳은 대관료를 돌려받지 못하거나 다음해로 공연을 미루는 식으로 합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우나 스태프를 위한 구제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연극 등을 통틀어 표준계약서가 있어도 작성하지 않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보상 규정을 정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없어서 혼란도 있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업계는 그동안 제작사별로 배우·스태프와 각각 다른 방식의 계약을 해왔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통합 규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정비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신춘수 대표는 “구체적인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모두가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얻은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뮤지컬 업계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표준계약서와 제작 방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재난 상황으로 공연이 취소될 경우 보상 방법이나, 공연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보험 등을 정교하게 만드는 식이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쪽은 단역배우(앙상블)와 기술스태프다. 2019년 공연예술 실태 조사를 보면, 공연 단체 중에서 4대 보험 가운데 1개라도 가입한 경우는 30.7%에 불과했으며,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26.1%에 그쳤다. 재난 상황에서 임금 수준이 낮은 단역배우와 스태프를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연습비 지급 방식을 통일하고, 앙상블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른 최저 지급액을 정해 그 이하로는 계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가이드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미국 브로드웨이 경우엔 연습비, 연임금, 지급 방식 등을 자세히 계약서에서 정하게 돼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개념은 희박하다.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는 “입장권에 부과하는 부가세를 면제하고 기금으로 적립해 앙상블과 스태프들을 위한 상시 보험의 기틀을 갖춰가는 방법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가 겪은 가장 큰 혼란 중 하나는 체계적인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연장이 문을 닫거나 공연이 개막 직전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보상을 받을 방법은 거의 없었다. 공공기관을 기준으로,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취소된 공연 건수는 3578건(국민권익위원회 발표)에 이른다. 민간 극장 등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공공 극장(대관료 환불률 94.5%)이 아닌 곳은 대관료를 돌려받지 못하거나 다음해로 공연을 미루는 식으로 합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우나 스태프를 위한 구제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연극 등을 통틀어 표준계약서가 있어도 작성하지 않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보상 규정을 정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없어서 혼란도 있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업계는 그동안 제작사별로 배우·스태프와 각각 다른 방식의 계약을 해왔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통합 규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정비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신춘수 대표는 “구체적인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모두가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얻은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뮤지컬 업계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표준계약서와 제작 방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재난 상황으로 공연이 취소될 경우 보상 방법이나, 공연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보험 등을 정교하게 만드는 식이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쪽은 단역배우(앙상블)와 기술스태프다. 2019년 공연예술 실태 조사를 보면, 공연 단체 중에서 4대 보험 가운데 1개라도 가입한 경우는 30.7%에 불과했으며,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26.1%에 그쳤다. 재난 상황에서 임금 수준이 낮은 단역배우와 스태프를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연습비 지급 방식을 통일하고, 앙상블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른 최저 지급액을 정해 그 이하로는 계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가이드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미국 브로드웨이 경우엔 연습비, 연임금, 지급 방식 등을 자세히 계약서에서 정하게 돼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개념은 희박하다.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는 “입장권에 부과하는 부가세를 면제하고 기금으로 적립해 앙상블과 스태프들을 위한 상시 보험의 기틀을 갖춰가는 방법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5월 정식 출범하는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 초대 협회장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오디컴퍼니 제공
“코로나가 준 교훈을 디딤돌로”…5월 뮤지컬제작자협회 정식 출범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뮤지컬제작자협회도 5월에 정식 출범한다. 초대 협회장을 맡게 된 신춘수 대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제작사 대표가 공식적으로 모여 업계의 공통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는 없었다. 이들이 처음 모인 건 지난해 8월 코로나로 힘든 앙상블과 스태프를 돕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서다. 신춘수 대표는 “그동안은 각자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 서로 논의할 계기가 없었다. 코로나19로 제작자협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제작자들도 각성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뮤지컬 시장이 커진 10년 전부터 우리끼리 경쟁하면서 라이선스 작품의 로열티(기술사용료)가 급증했다”며 “불필요한 출혈을 막고 코로나19 이후 합리적인 시장을 만들어나가려면 제작 시스템의 거품부터 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처럼 제작자협회와 함께 논의와 협의를 해나갈 배우·스태프 협회가 없는 상황에서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신춘수 대표는 “배우·스태프 각자가 느끼는 문제점을 논의하고 의견을 모아가면서 방향성을 모색해야 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원 대표는 “뮤지컬 업계 안에서 배우 등 다양한 협회가 만들어져야 업계가 더 건강하게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깨닫게 해준 교훈을 헛되이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83899.html